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아즈텍 제국 (문단 편집) === 꽃 전쟁 === 아즈텍의 전쟁 방식 중 대표적으로 알려진 것이 바로 '''꽃 전쟁'''이다. 적군을 죽이지 않고 생포하는 것. 5:5부터 400:400까지 다양한 크기와 형태로 일어난 국지전으로, 이는 [[틀락스칼텍]]같은 아즈텍에 비해선 영세하나 언제든 강력해질 수 있을 잠재력을 가진, 아즈텍에 적대적인 도시국가들을 상대로 벌어진 전쟁들이다. 아즈텍만의 고유의 전쟁 방식은 아니고 아즈텍 이전 고전기부터 존재해왔던 전쟁 방식이나, '''[[틀락스칼텍]]과의 200여년 간의 꽃 전쟁은 특기할만한다.''' 한창 테츠코코 근방을 평정하고 여러 민족 도시 국가들을 복속시켜가며 규모를 불리던 아즈텍은 근방의 틀락스칼텍 역시 몇 번 공격했으나, 이를 요격한 틀락스칼텍 병력들의 격렬한 저항으로 인해 틀락스칼텍을 정복하는 것은 매번 실패했다. 이러한 틀락스칼텍에 대한 공략이 매번 실패하고, 그렇다고 틀락스칼텍과의 원수 관계가 형성된 상황에서 놔뒀다간 틀락스칼텍이 어느 사이에 강대해져서 아즈텍을 공격하는 최악의 상황은 막아야만 했는데, 이를 위해서 사용한 방책이 바로 소규모 국지전을 통한 견제, 즉 '꽃 전쟁'이라 일컬어지는 전쟁 형태였다. 세력 간의 전쟁이 교착 상태로 빠지고 이에 대해 마땅한 대책이 없을 때 쓰이던 전통적인 의례 전쟁이었고, 이로 인해 아즈텍은 막대한 전비로 인해 경제가 망가지는 것을 막음과 동시에 틀락스칼라를 포위하고 사실상 손아귀 안에 있음을 과시할 수 있었다. 200여년간 이러한 꽃 전쟁을 통해 균형을 맞춰왔으며 다른 도시국가들에 대해서도 통제력을 가질 수 있었다.[[https://blog.naver.com/ohs6888/222287914489|#]] 그러나 이러한 꽃 전쟁의 지속은 틀락스칼텍같은 복속되지 않은 크고 작은 부족 세력들과 아즈텍 사이에 절대로 극복할 수 없는 악감정을 불러올 것이 명확했다. 계속된 아즈텍의 압박과 방어전에 이골이 난 틀락스칼텍은 언제든 테노치티틀란을 파괴하고 싶어했으며, 그러한 감정이 [[에르난 코르테스|코르테스]]의 에스파냐 군대와 만나게 되면서 결국 아즈텍 입장에선 최악의 형태로 현실화되었다. 꽃 전쟁 같은 소규모 국지전을 통한 영향력 행사는 [[고대 그리스]] 같은 도시국가들의 연합 형태의 권력 구도를 가진 여러 국가들에선 의외로 흔한 형태의 전쟁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스파르타도 실질적으로 정복한 영토인 메세니아를 일부러 멸망시키지는 않고 남겨두었고 매년 메세니아에 대한 전쟁을 선포해 쳐들어가 메세니아인들을 죽였다. 허나 아이러니하게도 이 때문에 후일 메세니아를 잃는데 테베와의 전쟁에서 진 후 테베는 스파르타에 의해 메세니아가 주권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했다며 메세니아에서 스파르타의 영향력을 없앴고(실질적인 독립) 이렇게 자유를 찾은 메세니아는 그동안 스파르타가 저지른 만행에 이를 갈며 스파르타에 대한 모든 지원을 중지하고 재침공에 대비해 방어준비를 했다. 이 때문에 메세니아의 독립으로 노예계급을 이루던 메세니아인들이 떨어져나가 큰 타격을 입었고 이에 메세니아 수복에 나섰지만 실패했다. 이후로도 메세니아는 로마에 병합되기 전까지 스파르타가 참여한 동맹에는 절대로 참여하지 않을 정도로 철저히 반스파르타 성향을 띄게 된다. 물론 아무리 거대한 제국이라 한들 이 전쟁을 항상 아즈텍의 승리로 가져갈 수는 없었다. 예를 들면 몬테수마 2세의 치세에서는, 꽃 전쟁이 6번이 있었는데. '''0승''' 4패 2무, 즉 한 번도 못 이겼고, 심지어 한 번은 침공을 받기도 했다.[* 사실 몬테수마 2세 시절이 아즈텍 제국이 재규어 전사 제도를 폐지해 국방력이 문제가 생겼고 또 복속한 국가들에 대한 과도한 공물 요구로 반란이 자주 일어났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